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예배할) 것이니라
(출 7:16; 8:1; 8:20; 9:1; 10:3; 26)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흔히 '가나안 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읽어보면, 이스라엘의 우선된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이전에 '다른 장소'로 인도하셨다. 어디냐면, 바로 “시내 산”이다(출 19장을 보라).
왜 하나님은 그들을 “시내 산”으로 인도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예배'하는 백성이 되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예배하는 법'을 먼저 배우고, 그다음 '정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출애굽기 다음 '예배의 책'(레위기)이 나오고, 이어서 '전쟁의 책'(민수기)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먼저 “예배자”가 되어야만 했다. 성경에서 오직 “예배자”만이 참된 “정복자”가 될 수 있다.
위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라고 말하도록 명하셨다. 여기서 “섬기다”는 단어는 그냥 '헌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원어로 '아바드'(abada), 곧 “예배하다”라는 동사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백성들로부터 예배를 받고자 그들을 애굽에서 건지셨다. 애굽의 열 가지 재앙도 실상은 '아바드', 곧 예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예배의 우선성은 태초의 에덴동산에서도 잘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을 “경작하라”라고 명하셨다. 이 단어도 본래 ‘아바드’(abad), “예배하다”라는 뜻이다(창 2:15). 창세기 1-2장의 맥락에서 “정복하라”(창 1:28)는 1장에 나오고, “예배하라”는 2장에 나온다. 그러나 “예배하라”가 하와를 창조하기 이전에 하신 명령임을 고려하면, 하나님의 명령은 시간상 “예배하라”, 다음 “정복하라”이다. 아담과 하와, 곧 태초에 사람은 가장 먼저 (에덴동산 안에서) “예배자”가 되어야 했고, 그 다음 그들은 (에덴동산 밖을 정복하는) “정복자”가 되어야 했다.
“제가 삶이 힘들어서, 교회를 3년만 쉬다가 오겠습니다.” 지난 날, 내가 어느 성도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 성도의 이런 생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예배를 포기하고 세상 문제를 먼저 해결한다는 생각, 이것은 절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런 순서를 그 어디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세상의) 정복자 → 예배자”가 아니라, “예배자 → 정복자”를 가르친다. “참된 예배자”가 가장 우선이다. 더 정확하게는 교회로서 예배자로 잘 무장될 때, 세상에서도 “예배자의 삶”, 곧 세상의 악과 죄를 “정복하는 삶”을 참되게 살 수 있다. 반복하지만, 가장 먼저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적으로 세상을 정복할 힘은 예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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