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눅 24:26-27)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눅 24:26-27)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6-27)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두 제자는 엠마오로 떠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23-24). 심지어 예수님이 눈앞에 오셨음에도(15), 그들은 눈이 어두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16). 두 제자의 마음 속에서 예수님은 부활에 실패했다. 그들의 마음속 예수님은 여전히 “무덤에 누인 시체”였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두 제자를 내버리지 않으셨다. 친히 그들을 찾아가셨고, 어두워진 눈과 마음을 밝혀주셨다. 무엇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밝히셨을까? “모든 성경”을 통해서이다. 예수님은 모든 성경으로 자..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 (마 17:20)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 17:20) 앞 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16:16). 여기까지만 보면, 베드로는 주님을 아주 잘 아는 듯하다. 하지만 주님은 이런 멋진 고백을 들으신 뒤, 갑자기 제자들에게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이 이상한 말씀은 ‘베드로의 고백’(16:13-20) 이후, 17, 20장에도 계속 반복된다. 이에 대한 구절들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하 3:17-18)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하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 3:17-18)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그때 그 시절, 밝고 신나는 곡조로 불렀던 복음송이다. 교회학교 선생님과 율동하며 불렀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러나 가사를 잘 음미하면, 이 내용은 전혀 신나지 않다. 17절은 요컨대 “농업”과 “목축업”이 망했음을 뜻한다. 구약 시대, 곧 고대 사회에서 이 둘이 망했다는 건, 나라의 패망을 뜻이다. 선지자 ..

    오병이어 잔치의 진실 (마 14:7-8, 21)

    오병이어 잔치의 진실 (마 14:7-8, 21)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마 14:7-8)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마 14:21) 마태복음 14장에서 흔히 오병이어의 기적만 보기 쉽다. 그러나 전체 문맥을 보면, 본 장은 “두 왕”을 소개한다. 앞에는 예루살렘 왕궁에 있는 “분봉 왕 헤롯”이다(14:1). 뒤에는 배를 타고 빈 들로 나가시는 “볼품없는 왕 예수님”이다(14:13). 두 왕은 모두 “잔치”를 벌인다. 간단히 말해, 14장은 “두 왕”이 벌이는 “두 잔치"의 이야기이다. 헤롯은 ..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이단 (막 8:15-16)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이단 (막 8:15-16)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막 8:15-16) 성경에서 누룩은 무슨 의미일까? 누룩은 "교훈"을 뜻한다. 복음서에서 바리새인의 누록은 그들의 외식, 곧 교훈을 뜻한다(마 16:12; 눅 12:1). 또 누룩이 부풀고 번지는 특징을 고려한다면,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점점 백성들을 더 오염시키며 부풀어 오르는 그들의 외식과 거짓 교훈이다. 본 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앞선 문맥 '칠병이어의 기적'(막 8:1-10)부터 살펴봐야 한다. 예수님은 떡 일곱과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셨다. 이 엄청난 기적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새로운 표적, 곧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구했다(..

    하나님 나라를 뺏길 자와 얻을 자 (마 21:43)

    하나님 나라를 뺏길 자와 얻을 자 (마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 21:43)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 흔히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죽기 전에는 하나님 나라에 절대로(?) 갈 수 없다는 편견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 주님은 '여기에 서 있는 사람 중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가 있다.'라고 말씀하셨다(눅 9:27). 위 구절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라는 표현을 쓰신다. "얻지 못하고”가 아니라, “빼앗기고”이다. 이 표현은 지금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있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당’만이 아니라, 이보다 더 넓은 의미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망각된 예수님의 승천 (막 16:19)

    망각된 예수님의 승천 (막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막 16:19)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기념하는 절기를 대부분 잘 지켜왔다. '성탄절'에는 예수님의 '탄생', '고난주간'에는 주님의 '고난', 부활절은 '부활'을 기념한다. 그런데 탄생 → 고난 → 부활'까지는 잘 기념하면서, 이어지는 중요한 한 가지를 간과한다. 무엇이냐면, 예수님의 '승천'이다. 교회력으로 '승천절'은 본래 존재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성탄', '고난', '부활'과 달리 '승천절'은 지켜본 적이 없다. 그래서 '승천'에 대한 인식이 아주 저조하다. 차라리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처럼 교회력을 지키지 않고, 성경 전체를 순서대로 가르쳤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는 절기를 교회력에 맞게..

    그들이 예배하도록 보내라! (출 7:16)

    그들이 예배하도록 보내라! (출 7:16)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예배할) 것이니라 (출 7:16; 8:1; 8:20; 9:1; 10:3; 26)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흔히 '가나안 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읽어보면, 이스라엘의 우선된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이전에 '다른 장소'로 인도하셨다. 어디냐면, 바로 “시내 산”이다(출 19장을 보라). 왜 하나님은 그들을 “시내 산”으로 인도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예배'하는 백성이 되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예배하는 법'을 먼저 배우고, 그다음 '정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출애굽기 다음 '예배의 책'(레위기)이 나오고, 이어서 '전쟁의 책'(민수..

    새 노래 (시 98:1)

    새 노래 (시 98: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시 98:1) 성경의 인물들은 가끔씩 찬송을 한다. 이 장면을 무심하게 넘기기 쉽지만, 그 ‘가사’와 부르는 ‘상황’을 살펴보면, 놀라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성경의 인물들은 아무렇게나 찬송하지 않는다. 그들은 반드시 “이것”과 관련해서만 찬송을 부른다. “이것”을 이미 경험했거나, “이것”을 장차 경험할 것이라고 확신할 때, 그들은 찬송한다. “이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이다. '모세와 미리암의 찬송'을 살펴보자(출 15:1-21). 그들은 홍해에서 바로 왕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건지신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한다. '한나의 찬송(기도)'도 살펴보자(삼상 2장). 내용을 보..

    겁쟁이 베드로, 용감한 베드로 (행 2:14-15)

    겁쟁이 베드로, 용감한 베드로 (행 2:14-15)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오전 아홉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행 2:14-15) 베드로는 '가야바의 집 바깥 뜰에서'(마 26:69), 닭이 두 번 울기 전 '새벽 3시경'(74),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할 때는 저주까지 했다(막 71). 그는 예수님이 끌려가시는 모습을 보며, 홀로 외로이 겁에 질려 자기 목숨을 구제하기 바빴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던 그 어두운 새벽, 그는 말 그대로 '외로운 겁쟁이'였다. 한편,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베드로는 다시 가야바의 집 옆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 밖에 섰다(행 1:13). ..

    열두 떡을 비추는 등잔대 (시 121:1-8)

    열두 떡을 비추는 등잔대 (시 121:1-8)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구약 시대에 '산'은 언제나 예배의 처소이다. 구약 성경을 잘 읽어보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곧 예배는 반드시 산에서 이루어진다. 아담의 '에덴동산', 노아의 '아라럇 산',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모세의 '시내 산' 등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의 예배 처소인 '예루살렘 성전'도 '시온 산'(예루살렘 산) 위에 세워졌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산'은 '성전'의 관용어로 사용된다. 따라서 시편 기자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라고 말할 때, 본 뜻은 '산에 있는 성전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를 의미한다. 시편 121편의 제목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로 지어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