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스 스킬더 (Klass Schilder)
강희현 역
(너희는 망하리라)... 헛된 노래들(idle Songs)을 흥얼대며 다윗과 같이 자기를 위해 악기를 제조하며...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아모스 6:4-6 (개역개정은 괄호의 내용이 없음)
순수한 소리가 없이 순수한 생각만으로, 형식이 없이 가사만으로, 하프가 없이 시편만으로, 비파가 없이 노래만으로 하는 자들은 가난하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공급하시는 부유함을 거부해왔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가난할 수밖에 없고, 또 그들은 그들의 빈곤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빈곤보다 더 가난한 것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건강하고 순수한 묵상이 없이 순수한 소리만 있고, 내용이 없이 형식만 있고, 시편이 없이 하프만 있고, 노래가 없이 비파만 있는 자들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은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의 자녀들은 바빌론의 여러 강변에서 그들의 하프를 버드나무에 걸었던 포로기에 그들은 폐허 속에서 가난했다(시 137:1-2). 그들은 다윗의 하프, 그 하프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아직 그 노래, 그 다윗의 시편은 다시금 들렸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시 137:5)
그러나, 시온의 안식에 있던 아모스는 죽었다. 그들은 다윗으로부터 온전한 유산을 받지 못했다. 다윗의 유산으로부터 그들은 비파, 수금, 순수한 소리, 그 음악, 그 예술을 이어받았지만, 그들은 그의 노래, 그의 시편, 그의 신성한 묵상, 그 선함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때 그 결과는 끔찍했다.
그 하프, 그 수금, 그 음악은 내용이 없는 것이 결단코 아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생각들(ideas)에 기초를 둔다. 그래서, 다윗 후손의 마음에서 다윗의 묵상들이 사라질 때, 그들은 더이상 다윗과 같이 기도하지 않았고, 다윗과 같이 고백하지 않았다. 더이상 다윗과 같이 자비를 위해 울지 않았다. 더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윗과 같이 노래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다윗의 비파를 유지했고, 그 예술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다윗의 시편, 대신 말이다. 이처럼, 이 세대도 헛된 노래들(idle songs)을 불렀고, 그 신성한 음악은 댄스 음악으로 대체했으며, 다윗이 개발했던 악기는 낯선 자들의 손에 들어갔고, 불경한 자들과 “속세의” 노래들은 다윗의 신성한 예술을 압도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노래하고, 기도하며, 그리고 떨었다. 그러나, 이러한 하프연주자들과 비파 연주자들은 요셉의 황폐를 슬퍼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울지도 않는다.
아모스 동시대에 연주됐던 모든 세속적 곡조들은 다윗의 하프를 포기한 그들의 죄에 대한 고발이다. 왜냐하면, 다윗의 묵상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속 음악은 언제나 여전히 우리를 향한 고발이다. 오 교회여! 너는 네 마음대로 그 음악, 그 예술을 포기해왔다. 다윗의 묵상들이 너에게서 잠들었기 때문에, 너는 다윗의 수금에게 휴가를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모스는 우리에게 말한다: 모든 다윗의 노래들은 다윗이 추구했던 것처럼 예배에서 아름다운 형식, 아름다운 소리를 추구했다. 그러나, 만일 그 형식이 당신을 흥분시키고,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당신의 가사(Content)는 어디에 있는가?
당신이 새로운 형식을 찾든지, 혹은 완고하게 옛 형식을 붙들든지, 당신에게 다윗의 묵상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당신의 고난은 어디에 있는가?
오직 다윗의 묵상을 아는 사람만이 그의 눈에 선하며, 그 현을 연주하기에 알맞은 그의 수금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순수한 묵상을 지키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마음처럼 되게 하라. 그러면, 당신의 노래와 예술-형식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고, 다윗과 같이 신선하게 항상 유지될 것이다.
수금의 개혁은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설령 당신이 옛 형식 그대로 변하지 않는 다윗의 수금을 내버려 둔다고 해도, 만일 다윗의 묵상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면, 보아라(Behold), 그때 다윗의 수금을 깊이 신뢰하는 당신도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될 것이다(고전 13:1).
출처: 이 글의 원문은 스킬더(K. Schilder) 박사의 설교와 글들을 모은 “Om Woord en Kerk” Vol. 1에 수록된 원제: “wel Davids luit, niet Davids lie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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