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는 제사에서 재 창조
(Re-creation in the Ascension Offering)
James B. Jordan
강희현 역
이 에세이는 잠정적(tentative)이고 탐구적인(exploratory) 것으로, 당신의 숙고가 요구된다.
내가 보기에 레위기 1장의 “올라가는 제사”(번제물로 오역됨)는 창세기 1장의 상징적인 반복(recapitulation)으로, 희생적 제의는 타락에서 새 창조로 옮겨가는 방법으로 묘사한다. 만약 이 개념이 옳다면, 그것은 새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뿐 아니라 모든 희생적 제의에 상당한 빛을 비출 것이다.
첫째 날(Day 1): 레위기 1:4. 하나님께서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두운 세상을 만드셨다. 그리고 성령께서 세상에 오셔서 빛을 가져오셨다. 나는 땅으로 만든 희생 제물의 동물(창 1:24)이 (땅으로 만든) 사람을 나타낼 뿐 아니라, 인간의 우주(cosmos)는 스스로 자각하는(self-conscious) 측면과 대표성임을 제안한다. 이것은 내가 볼 때,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그 짐승에게 손을 얹으면, 그것과 함께 일하려고 피조물 속으로 들어오시는 성령과 유사하다.
둘째 날(Day 2): 레위기 1:5a. 하나님은 그 위에(천상에) 있는 물과 그 아래에(땅에) 있는 물 사이에 하늘(Firmament)을 놓으셨다. 그 동물은 죽었다. 그 동물은 덮개(cover)로 지정되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창공(firmament)이 되어 하나님의 눈에서 사람의 죄를 덮는다(v. 4, 속죄로 오역됨). 그 동물을 죽이면 덮개가 생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를 덮는 좋은 창공(firmament)이 죄악에 대한 죽음이다.
셋째 날(Day 3): 레위기 1:5b-6. 하나님은 마른 땅을 만드셨다. 그중 가장 높은 곳은 제단을 상징하는 성산(Holy mountain)이다. 가득했던 물이 3일째 되는 날 땅에서 그 밑바닥으로 흘러내리듯이, 피도 제단의 옆으로 뿌려진다. 그다음 그 동물은 가죽이 벗겨지고 토막이 난다. 이제, 3일째 되는 날의 반나절을 지나, 하나님께서는 포도주와 빵의 기초인 과일나무와 곡식 식물을 만드셨다. 이러한 두 가지는 피와 동물의 살, 마치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타내듯, 평행을 이룬다. 주님의 만찬에서와 같이 짐승의 피와 살이 같으며, 빵과 포도주는 예수의 몸과 피를 유사하다. 나중에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부패(11-16장)와 피의 혐오(17-22장)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동물을 살과 피로 분류하는 것은 셋째 날에 빵과 포도주의 식물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넷째 날(Day 4): 레위기 1:7 하나님께서는 땅 위 창공(firmament)에 그의 굳건한 불들을 세우신다: 해, 달, 별들. 제사장들은 천상에서 내려온 거룩한 불(레 9:24)을 제단 위에 올려놓는다.
다섯째 날(Day 5): 레위기 1:8. 동물의 머리와 기름, 겉과 속은 불 위에 얹혀서, 하나님의 음식으로써 연기로 변한다. 항상 그렇듯이 7일 중 다섯째 날의 연결에는 문제가 있다. 나는 머리와 지방이 새와 물고기와 일치하는 것을 전혀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지금 간단히 제쳐두고자 한다.
여섯째 날(Day 6): 레위기 1:9a. 동물과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다. 내장과 정강이, 곧 부정한 겉과 속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 바쳐진다. 이것은 세례에 의해 복원된, 가장 완전한 제물(산 제물)을 나타내고, 여섯째 날 창조된 아담과 이브와 일치한다.
일곱째 날(Day 7); 레위기 1:9b. 안식일이다. 이 제물은 여호와께 (휴식을 위한) 부드러운 향기로서 올라간다.
이것들은 단지 예비적 관찰에 불과하다. 창세기 1장의 7일 패턴은 창세기 2-4장, 그리고 창세기 전체에 걸쳐서, 그리고 성막을 위한 지침에 수없이 반복된다. 이 모든 것은 레위기 1장의 배경이다. 따라서, 나의 초기 논문이 옳다면, 이런 창조적 반복들은 레위기 1장을 더욱 조명하여 개선과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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