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양의 비유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눅 15:10)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
...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눅 15:32)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 “잃은” 비유가 등장한다.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의 비유이다. 이 비유들은 마지막에 전부 같은 결론은 말한다. 그것은 "기쁨"이다. 누가복음은 종종 "잃어버린 자를 위한 복음서"로 불린다. 본서의 독특한 강조점, 곧 '잃은 자 찾기'에 몰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같이 자칭) '의로운 자', '착한 자', '선한 자'를 찾지 않으신다. (엄밀하게는 그들이 주님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세리”, "간음한 자", “죄인”들을 찾으시고, 그들을 영접하시며 기뻐하신다(cf. 눅 7:34; 18-19). 누가복음이 강조하는 패턴은 '죄인' → '찾기' → ''영접' → '기쁨'이다. 간단히 말해, 특히 본 장은 예수께서 잃어버린 죄인을 찾고 영접할 때,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자기 의'와 율법 준수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않는다. 믿음으로 주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참된 기쁨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의 재능', '노력', '착함', '의로움'을 뽐내면 될까? 찬양을 부를 때 아름다운 목소리, 뜨거운 기도, 많은 금액의 헌금, 선행을 기뻐하실까?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죄인이다. 사실 인간적인 모든 노력과 선행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때 묻었으며 가증하다. 하나님께서는 '나' 자체의 어떤 행위도 기뻐하시지 않는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이런 행위가 기쁨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기쁨은 오직 한 가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이다. '죄인과 예수님의 만남'이다. 죄인이 주 안에 거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부를 기뻐하신다. 설령 '음치'가 하나님을 찬송할지라도, 부실한 기도, 적은 액수의 헌금도 하나님게서는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그 자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오로지 '예수님'이다. 예수님 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다른 방도는 없다.
흔히 기도 말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문장을 붙이는 이유도 이와 같다. 왜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겠는가? 잘 생긴 외모 때문인가? 마음이 깨끗해서인가? 무척 애절하게 기도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자신에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큼의 선한 것들이 없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유는 오로지 "잃은" 죄인들이 예수님께 의해 "찾아"졌고 그분을 "영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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