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암셋”에서의 생활
1) 라암셋에서의 초기 생활(창 47-50장)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창 47:11-12)
야곱은 요셉의 생존 소식을 듣고, 온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들이 거주한 땅은 위 구절이 말하듯이, 애굽의 좋은 땅, 곧 “라암셋”이다. 사실, 우리는 창세기 후반에서 당시 야곱의 가족이 누렸던 애굽에서의 생활에 관한 여러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로, 그들은 애굽에서도 “목축업”을 지속했다(47:3). 둘째로, 그들은 바로 왕과 주종관계가 아니었으며, 여전히 “하나님의 종”이었다(50:18-19). 마지막으로 요셉의 유언은 라암셋이 그들의 영원한 정착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결국 약속의 땅으로 자신들을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했다(50:24).
2) 라암셋에서 후기 생활(출 1장)
창세기 50장과 출애굽기 1장은 성경책에서 “종이 한 장” 차이이지만, 내용상으로 상당히 긴 시간을 생략한다. 사실, 우리는 놓치기 쉽지만,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세기와 같은 라암셋에 거류하지만, 그들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출애굽기 1장을 잘 보면, 첫째로, 그들은 이제 “목축업”이 아닌 “벽돌 제작”, “농업”과 같은 여러 잡무에 종사하고 있다(1:14). 둘째로, 그들 위에는 “관리자”(taskmaster)가 있어서 바로 왕과 주종관계가 형성되어 있다(1:11). 마지막으로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바로를 위한 국고성, 곧 비돔과 라암셋의 완성을 바라보며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상황에 있다(11). 우리가 이러한 라암셋의 ‘초기’와 ‘후기’의 생활을 간단한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초기 생활 (창세기 47-50장) |
후기 생활 (출애굽기 1장) |
|
주인-종의 관계 | 하나님의 종 (50:17, 19) |
바로 왕의 종 (1:11) |
생업 | 목축업 | 농업, 벽돌 제작, 여러 가지 일들 |
목적 | 생육하고 번성한 후, 가나안 땅으로 귀환 |
국고성을 건설 후(번성 x), 영원한 애굽의 종 |
우리가 앞선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살폈듯이, 목축업은 기본적으로 장막을 치고, 가축을 기르는 유목 생활, 곧 이동식 생활의 전형이다. 따라서, 라암셋에서의 야곱의 가족들은 초기에 목축업을 유지하며, 가나안 땅으로의 귀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하지만, 출애굽기에서 그들은 비(非)-이동식 생업, 곧 농업과 벽돌로 세워진 도시를 건설하는 바로의 종이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출애굽기 1장이 비추는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종이 아닌, 국고성의 완성을 바라보는 바로의 종으로서의 비참한 모습이다.
출애굽기 1:11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탄압받은 이유를 설명하고 출애굽의 신학적, 도덕적 정당성을 제시한다.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 "노예 주인"(Slave masters, NIV)을 세웠다. NIV의 이런 번역은 본문의 의도 및 사람들의 실제 상황에 대한 이후 설명으로 볼 때 정당하게 보인다.
Willem VanGemeren, Ed., NIDOTTE, Vol. 2, 994.
2. 바로를 위한 국고성(國庫城)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國庫城)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출애굽기 1:11)
여기서 국고성으로 언급되는 비돔(Pitom)은 어원상 (애굽의 신) “아톰의 집”(house of Atum)을 의미한다. 아마도 이곳은 애굽의 신전이 있는 도시로 추측된다. 또 함께 언급되는 라암셋(Rameses)은 어원상 “람세스의 집”(house of Rameses)으로 “왕의 도시” 혹은 “제2의 수도”로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는 성경이 침묵하는 이 도시들의 자세한 정보보다, 이 도시를 건설하는 백성의 모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몇 가지 구절들로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어려운 노동으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출 1:14)
이스라엘이 처음 애굽 땅에 왔을 때, 그들은 대대로 유목민으로서 본래 생업은 “목축”, 거주지는 “장막”이었다(창 47장 참조). 그러나, 바로는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농업”과 “벽돌 제조”를 강요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백성에게 일의 분량을 상당히 과도하게 부여하여, “무거운 짐”이 되도록 했다(11). 즉, 바로가 요구하는 국고성 건축은 유목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맞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일 자체도 상당히 어렵고 무거운 분량이었다.
2)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출 2:23)
출애굽기의 문맥을 고려하면, 국고성 건축은 모세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했고(1:11), 모세가 출애굽을 위해 바로 왕을 만날 때도 계속되고 있었다. 또한, 본 구절이 말하듯이, 애굽 왕이 바뀌어도 역시 계속되고 있다. 즉, 바로를 위한 국고성(도시) 건축은 단순히 수개월 혹은 수년 안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이는 생각보다 정말 오래 계속된 엄청난 규모의 공사였다!
3)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바로가 이렇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짚을 찾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그러나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보통 어떤 일이든지, 진행 정도에 따라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국고성 공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바로는 모세의 출애굽 요구를 들은 후, 오히려 더 백성들이 재료를 구하기 힘들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백성들은 더 큰 고초에 시달렸다.
4)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10-11)
다시 1장으로 돌아와서, 국고성(국고의 도시) 건설을 통해 이루려는 바로의 본래 목적을 생각해보자. 그는 단순히 국고성 건축만을 원하는가? 여기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이스라엘의 세력을 약화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생육과 번성”을 크게 두려워한다(1:9, 12). 즉,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영원한 그의 종(slave)이 되어, 점점 그 힘을 잃어버리고, 결국 파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세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두 도시, 즉 "저장의 도시"(store cities)로 묘사된 비돔(Pithom)과 라암셋(Rameses)를 건설하는데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비돔(Pithom)은 "툼의 집"(house of Tum)[=신 아툼의 집]으로 보통 알려져 있으며... 반면, 라암셋(Rameses)의 도시는 보통 애굽 "람세스 집"(house of Ramses)의 히브리식 이름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그것을/그를 재창조하다"를 뜻하는 '리암스'(ri-amses)에서 유래했을지도 모른다...
Douglas K. Stuart, Exodus, Vol. 2.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2006), 69.
"라암셋"(Raamses)이라는 이름은 의심에 여지 없이 람세스 2세(Ramesses II, 1279–1213 BC)의 이름을 딴 '람세스의 집(house of Ramesses)'으로, 수도 "피-람세스"(Pi-Ramesse)로부터 유래되었다.
T. Desmond Alexander, Exodus, (London; Downers Grove, IL: Apollos; InterVarsity Press, 2017), 247.
이스라엘 자손이 건설한 두 개의 저장 도시는 식량과 군비 저장을 위한 것이었다.
Walter C. Kaiser Jr.,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Genesis–Leviticus, vol.1., 352.
3. 하나님의 새 국고성: 성막
출애굽기의 서두에서 이스라엘은 “바로의 종”으로서 “바로를 위한 국고성”(1:11)을 지으며 시작하지만, 그 말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집(성)인 “성막”을 완성하며 끝마친다(40). 특히, 우리는 “국고성”과 “성막”을 짓는 과정들을 비교할 때, 여러 흥미로운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성막의 국고(國庫): 만나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출 16:33-34)
앞선 애굽의 국고성은 말 그대로, “바로를 위해서” 존재하는 국고성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바로 왕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라암셋”에 국고성을 건설했지만, 이스라엘의 생육과 번성을 위해 식량을 공급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만나”는 오직 백성의 생육과 번성을 위한 것이다. 물론, 성막에 있는 만나는 오로지 교육적 목적을 위해 보관된 것이다. 하지만, 성막 자체가 하늘 성소의 모형이듯이(히 9:24), 백성들은 지상 성막의 만나를 통해, 하늘 성소에 풍성한 국고로서의 만나를 보게 된다. 실제로, 이 만나는 마치 40년 기근을 만난듯한 메마른 광야에 풍성한 국고로서 식량으로 그들에게 지급되었다(16:35).
2) 성막의 건축자: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출 36:2)
바로의 국고성(도시), 곧 애굽의 (거짓) 신과 바로 왕의 집을 건축하는 일에 이스라엘 온 백성은 강제적으로 어려운 노동과 힘든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다(1:11, 14; 2:23).
반면,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참 신이신 하나님의 성막을 건축하는 일은 전혀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막 건축을 위해 모든 백성을 강제로 부르지도 않으시고, 또 무리한 일을 요구하지도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이 아닌 필요한 자들만 부르시고, 또 필요한 자들에게 필요한 지혜를 허락하시며, 또 강제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성막을 짓도록 하신다.
3) 소박한 성막: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출 36:4-7).
바로의 국고성(도시) 건설은 모세가 태어나기 전부터 출애굽 직전까지도 미완의 상태였다. 즉, 우리가 대략 추측해도, 이는 거의 수십 년 이상 계속됐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바로 왕은 나중에 벽돌 제작에 필요한 짚(재료)을 공급을 끊어서, 오히려 재료의 부족함만 더 가중시켰다(5:16-18).
반면, 하나님의 성막 건축은 이와 전혀 달랐다. 또한, 성막은 모두 완공하기까지 수개월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고, 재료에 있어서도 광야의 부족한 물품으로 충분하게 충당될 만큼 아주 소박한 건축물이었다. 우리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성막의 설계도를 보며 너무 복잡하고 힘들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바로의 국고성을 지었던 당시 백성에게는 너무 간단한 건축이다!
4) 백성을 위한 성막: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이...”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출 40:38)
바로의 국고성(도시)은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떠나지 못하게 막는 무거운 짐이었고(1:11), 갈수록 백성의 숨통을 조였을 뿐 아니라, 결국 그들을 죽이게 하는 도시 건설이었다(5:14-21). 하지만, 성막은 역시 이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이 소박한 성막에 친히 영광으로 임재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보호하며,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신다.
4. 오늘날의 적용: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고후 6:16)
하나님께서는 국고성을 지으며 무리한 노역으로 파멸해 가는 바로의 종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지셨으며, 그들을 하나님의 새 국고성, 곧 성막을 짓도록 하셨고,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셨다. 이처럼, 오늘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탄의 종으로 세상에서 멸망의 노역에 시달리는 우리를 건지셨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임하시는 그분의 거룩한 성전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 길에서 성막에 임재하셔서, 만나로 그들을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심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같이 하심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며 전진해야 할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출애굽기의 말씀(29:45)으로 말하듯이,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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