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와 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지팡이)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출 4:3-4)
왜 하나님께서는 하필 '뱀'으로 만드셨을까? 하나님의 권능을 더 강력하게 보일 다른 이적도 있을 텐데 말이다. 성경이 그 이유를 딱 집어서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어지는 구절은 이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제공한다.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출 4:5)
하나님께서는 지팡이를 뱀으로 만드신 뒤, 꼬리를 잡아 다시 지팡이로 만드셨다. 그 다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나타난 줄 믿게 하려 한다고 말씀하셨다. 문맥을 고려하면, 이 기적은 '창세기', 그중에서도 족장들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창세기와 '지팡이', '뱀'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족장들을 상징하는 지팡이
흔히 모세가 홧김에 애굽인을 죽였고, 이로 인해 광야에 숨어 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광야에서 모세의 삶을 믿음의 행위로 간주한다(히 11:24-26). 그는 공주 아들이라는 왕족의 신분을 포기했고, 광야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유목 생활을 했다. 유목 생활은 그 신분이 '정착민'이 아닌 '나그네'임을 잘 나타낸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실 그때를 광야에서 기다리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국고성 건축으로 농업과 벽돌 제조에 수십 년간 종사했다(cf. 출 1장). 그들은 조상의 직업인 목축업과 무관한 후손이 되어버린 상태이다. 이런 백성들 앞에 모세가 목자의 지팡이를 들고 나타난다. 이는 상당히 유의미하다. 모세는 족장들을 떠올리는 목자의 지팡이를 들고, 백성들이 애굽의 '정착민'이 아니라 (족장들이 기다렸던) 약속의 땅으로 떠나야 할 '나그네'임을 상기시켰던 것이다.
뱀에 대한 권능을 나타내는 지팡이
모세의 지팡이가 '목자'만을 상징했다면, 창세기 족장들을 상기시키는 추억의 물건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팡이는 이를 넘어 ‘지팡이-뱀-지팡이’의 기적, 곧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냈다. 뱀은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의 사탄을 연상시키는 동물이다. 하와를 속여서 아담과 함께 동산에 쫓겨나도록 만든 근원적 대적(악)이었다. 따라서 지팡이에서 변한 뱀이 동산의 그 뱀을 상징한다면, ‘지팡이-뱀-지팡이’의 변화는 대적(사탄)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막강한 권능을 나타낸다.
애굽인들은 뱀을 지혜와 치유의 원천으로 숭배했기 때문에, 뱀은 애굽 권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고 다시 뱀으로 바꿈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신들과 사탄에 대한 그 권위를 보여주셨다. 이 상징은 모세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Ryken and Hughes, Exodus: Saved for God’s Glory, (Wheaton, IL: Crossway Books, 2005), 109.
이것(뱀의 꼬리를 잡는 것)은 모세의 지팡이가 여호와의 권능을 상징했다는 개념의 시작이며, 이는 모세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지팡이를 하나님의 왕좌의 상징으로 이를 지탱하는 것으로 끝나는 개념이다.
Stuart, Exodus,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2006), 129
'지팡이'와 '재앙'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바로 왕을 찾아갔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고 말했지만 바로 왕은 듣지 않았다. 심지어 지팡이가 뱀이 되고, 모세의 뱀이 마술사의 뱀들까지 모조리 삼켰어도 고집은 여전했다(출 7:13). 그래서 이후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 곧 재앙을 일으키는 도구로 계속해서 사용된다. 사르나(Nahum M. Sarna)는 이 재앙들에 세 쌍씩 세 주기가 있음을 제안한다. 이를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재앙 | “백성을 보내라!” | 시간(Time) | 모세(아론)의 행동 | |
첫째 주기 | 피 | O | “아침에” | 지팡이-물 (출 7:19; 8:5) |
개구리 | O | x | ||
이 | X | x | 지팡이-땅 (8:17) |
|
둘째 주기 | 파리 | O | “아침에” | 여호와-구별 (8:23; 9:4) |
전염병 | O | x | ||
악성 종기 | X | x | 손-하늘 (9;10) |
|
셋째 주기 | 우박 | O | “아침에” | 지팡이(손)-하늘 (9:23; 10:13; 22) |
메뚜기 | O | x | ||
어둠 | X | x |
레이하르트(Peter J. Leithart)는 세 주기(series)가 각각 '물-땅-하늘'의 구조를 띤다고 주장한다. 물론 성경에서 이 구분이 뚜렷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상 그의(혹은 아론의) 지팡이는 '물-땅-하늘' 순으로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낸다.
'지팡이'와 '광야'
모세의 지팡이는 유월절 이후로 광야에서도 같은 용도로 계속 사용된다. 광야 생활에서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사건 | 광야에서 지팡이의 용례 |
홍해 사건 |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14:16, 물) |
므리바 사건 |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그 반석을 치라(17:5-6, 땅) |
아멜렉과의 전투 |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17:9, 12, 하늘) |
광야의 사건들과 애굽 재앙들을 지팡이 중심으로 추적해보면, 항상 ‘물-땅-하늘’에 사용된다. 이런 지팡이의 용례는 구약의 삼층 구조 세계관과도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출애굽기에서 삼층 구조의 세계관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계명에서 잘 나타난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4-5)
세계에 대한 삼층 구조로서의 이해는 '노아의 방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노아에게 방주를 삼층으로 짓도록 하셨으며, 이는 세계의 구조에 대한 반영이다. 따라서 모세의 지팡이가 애굽에서 “물-땅-하늘”에 휘둘려졌고, 각 영역(층)에 재앙이 내려졌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애굽이라는 '바로의 집', 곧 “바로의 세계' 전체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광야에서 지팡이가 '물-땅-하늘'에 휘둘려졌음도 역시 같은 의미를 갖는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 전체를 심판하셨고, 광야에서도 자기 백성을 위해 “물-땅-하늘”, 곧 세상 전체에서 권능을 행사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팡이가 물, 땅, 하늘에 휘둘려지며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남을 볼 때, 반드시 깨달아야 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실 뿐 아니라, 온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는 만유의 주권자이심을 말이다!
예배를 위한 지팡이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예배할) 것이니라” (출 7:16; 8:1; 8:20; 9:1; 9:13; 10:3)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의 지팡이로 이러한 (물-땅-하늘에 임하는) 우주적 재앙을 내리셨을까? 출애굽기에서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시내 산'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무엇을 목표로 삼는가?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에게 말씀하셨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예배할 것이니라.” 한글성경(개역개정)은 “섬기다”로 번역했지만, 이 단어는 “예배하다”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그분 자신을 예배할 수 있도록 보내라고 재앙을 내릴 때마다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사실 출애굽의 목적을 무조건 가나안 땅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일차적 목적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섬기는) 것이다.
지팡이 사용의 목적도 마찬가지이다. 지팡이를 통해 나타난 권능들은 단순히 애굽을 심판하고 광야에 물을 내거나 아말렉을 멸망시키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 지팡이는 궁극적으로하나님의 백성을 여호와의 산, 곧 시내 산으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예배자로 구별하여 부르셨고, 그 부르심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모세의 지팡이로 물리치셨다. 설령 그것이 “물-땅-하늘”, 곧 세계 전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예배자를 반드시 불러모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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