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본 "사닥다리"?
야곱은 에서를 피해 가나안 땅을 떠나는 도중이었고, 그는 잠시 벧엘에서 잠을 청했다. 여기서 야곱의 상황은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가나안 땅을 떠난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태롭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즉,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기 때문에, 그 땅을 떠난다는 건 하나님의 약속과 직결된 문제이다. 어찌보면,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쟁취하려는 전사와 같았으나, 그 약속을 얻기가 아주 힘들어진 "현실", 곧 패배의 기운이 강하게 맴도는 그런 상황 속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모세는, 몇 마디로, 성자(야곱)가 얼마나 험하고 힘든 여정을 보냈는지 선언한다...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Vol. 2, 111.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세기 28:12-13)
야곱은 꿈에서 환상을 보게 된다. 그런데, 환상에는 좀 특이점이 있다. 그것은 “사닥다리”이다. 우리가 알기로 사다리를 사용하려면, 두 손과 두 발을 다 써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계셨다고 하는데, 사다리 위에 두발로만 서 있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사닥다리”는 “계단”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더욱이, “계단”으로 번역하는 게, 우리의 상상으로도 훨씬 더 자연스럽다. 물론, “계단이냐 사다리냐”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이어지는 구절에서 등장한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세기 28:17)
야곱은 환상으로 “계단”(혹은 사다리)이 하늘에 닿아있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야곱의 반응에서 “하늘의 문”은 그럴 듯하지만, “하나님의 집”은 뭔가 이상하다. 즉, 계단이 하늘에 닿아서 그걸 “하늘의 문”으로 본 건 말이 되는데, “하나님의 집”은 왠 말인가? 더욱이,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사닥다리”, “하늘의 문”이 아니라,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지었다. 이 말은 야곱에게 그곳이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집”으로서 의미가 더 크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벧엘에서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나님은 야곱에게 꿈에 나타나셨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묘사된 것처럼 사다리의 환영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천사 같은 왕래로 가득 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돌계단의 환영이었다.
Iain M. Duguid, Living in the Grip of Relentless Grace,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2002), 52.
바벨 vs 벧엘
그러면, 도대체 야곱은 거기서 무엇을 본 것일까? 물론, 추측이지만, 야곱은 “계단”만을 본 것이 아니라, 그 계단이 붙어 있는 어떤 “건축물”을 봤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늘에 닿을 정도였기 때문에, 어떤 거대한 “성”을 봤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만일 이렇게 이해한다면, 창세기의 맥락에서 이 거대한 성은 바벨탑(성)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게 된다. 즉, 바벨탑은 인간이 자기 함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성이었다. 반면, 야곱이 본 성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땅으로 세우신 성이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세기 11:4)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세기 28:21)
바벨탑과의 극명한 대조는 그 내용에서도 나타난다. 바벨은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성을 쌓을 뿐 아니라, 스스로 흩어짐을 면하려 했다. 반면, 지금 야곱은 자신의 힘으로 성을 쌓을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 흩어짐을 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흩어짐을 면하려는 반역의 백성들을 과감히 흩으셨으며, 반면 약속의 땅을 떠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야곱에게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8:15)
이 환상의 배경은 바벨탑 이야기이다. 그 탑은 지구라트, 계단식 피라미드 사원으로, 본질적으로 비슷한 종류의 돌계단으로 생각되었다...
Iain M. Duguid, Living in the Grip of Relentless Grace, 52.
거룩한 성전, "벧엘"
벧엘에는 이것 말고도,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야곱은 거기서 “기름”을 붓는 행동을 하고, 또 “십일조”를 바친다는 점이다. 우리는 훗날 야곱이 벧엘에 돌아왔을 때도 이러한 특이점을 역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는데, 자녀들에게 “정결”을 요구하고 있다. 또 거기서 “전제물”을 붓기도 한다. 이처럼, “기름”, “십일조”, “정결”, “전제”와 같은 모든 행동은 구약에서 한 장소로 귀결되는데, 그곳은 바로 “성전”이다. 사실, 야곱이 환상에서 봤던 거대한 성(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봤다. 실제로, 성경에서 성전이 종종 하나님의 집으로 불린다는 점이 이를 잘 나타낸다. 그러므로,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결국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이었다.
이 이야기는 족장들의 제단건축을 "성전"이라는 개념과 더욱 연결시켜주는데, 이스라엘 이후 성전은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곳, 특히 천상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 '성전'이기 때문이다.
G. K. Beale,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Downers Grove, IL; England: InterVarsity Press; Apollos, 2004), 101.
신약의 야곱: 나다니엘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 1:45-46)
신약의 나다나엘은 구약의 “야곱”을 상기시키는 인물이다. 그는 구약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렸다(45), 하지만, “현실”상 “나사렛”이라는 출신에 의심을 품는다(46). 이것은 마치,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으면서도, 그 땅 앞에서 “에서”라는 “현실”과 갈등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여준다(창 31:5).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속임)한 것이 없도다...
하지만, 야곱은 결국 속임과 기교를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발목을 붙잡았고, 나다나엘도 역시 “나사렛”이라는 “현실”을 내려놓고, “약속”의 성취이신 예수님께로 찾아온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야곱이 아닌)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며, “간사함”(속임)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즉, 나다나엘은 신약의 “새로운 이스라엘”이다.
요한복음 1:51에 그 암시를 알아본다면, 1:47가 예수님이 제자들과 야곱/이스라엘의 비교를 요청하는 첫 번째 힌트임을 알 수 있다.
Paul M. Hoskins, Jesus as the Fulfillment of the Temple in the Gospel of John, (Eugene, OR: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7), 127.
신약의 성전: 예수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나다나엘에게 예수님께서는 신약의 사닥다리, 곧 신약의 성전이 예수님 자신이심을 선언하신다. 사실, 야곱이 이 환상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과 자손이 땅끝까지 번성한다는 약속을 주셨다. 그리고, 야곱은 “현실”을 극복하고 “약속”을 온전히 믿는 “이스라엘”이 되어 그 자손들과 함께 벧엘로 돌아왔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우리가 성경에서 나다나엘을 또 볼 수 있는 곳은 이 구절뿐이다. 물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없지만,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현실”과 부활이라는 “약속”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음에도, 갈릴리에 물고기를 잡으러 오는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죽음이라는 “현실”은 이미 이기셨고, 부활이라는 그 “약속”도 이미 성취됐음을 친히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들이 주 안에서 “새 언약의 성전”(교회)이 되어,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다.
오늘날에 적용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의 “성전”(혹은 사닥다리, 계단)을 통해, 우리의 “현실”과 “하나님의 약속” 사이에 있는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야곱이 본 “성전”는 환상이고 현실이 아니었다. 어쩌면, 야곱도 하나님의 약속을 “환상”과 같이 허상이라고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환상의 성전을 참으로 이루셨고, “야곱”을 “이스라엘”로 새롭게 하셨다.
그러므로,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고 있는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거짓으로 치부하지는 않는가? 어쩌면, 인간적인 기교로 그 약속을 이루려 하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여기서 성경을 통해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 곧,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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