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현
낙원의 구속사
강희현
전체 방문자
오늘
어제
  • 모든 글 (84)
    • 아티클 (76)
      • (구속사적) 물건 신학 (12)
      • 개혁파 교회사 (7)
      • 슬 신(교리) (35)
      • 장로교회를 소개합니다 (8)
      • 짧은 묵상 (14)
    • 번역 (8)
    • 설교 (0)

블로그 메뉴

  • 홈
  • 태그
  • 방명록

공지사항

인기 글

태그

  • 성경공부
  • 교회개척
  • 구원의 서정
  • 개혁교회
  • 개혁신학
  • 교회질서
  • 구약성경
  • 스킬더
  • 교회사
  • 신약
  • 종교개혁가
  • 야곱
  • 종말론
  • 구속사
  • 교리
  • 구원론
  • 창세기
  • 신약성경
  • 조직신학
  • 파이브 솔라
  • 선지서
  • 교리공부
  • 성경신학
  • 장로교회
  • 코로나19
  • 성례
  • 슬신
  • 복음서
  • 개혁주의
  • 구약

최근 댓글

최근 글

티스토리

hELLO · Designed By 정상우.
강희현

낙원의 구속사

아브라함의 장막 : 창세기 12장
아티클/(구속사적) 물건 신학

아브라함의 장막 : 창세기 12장

2021. 5. 6. 17:36

 

 

 

 

“나그네” 아브라함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순종”의 모델로 여긴다. 물론, 순종은 그의 이야기에서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주요 주제이다. 실제로,처음에 순종으로 가나안 땅에 나아갔고(창 12:1-4), 끝에도 순종으로 독자 이삭을 바쳤다(창 22장). 이처럼, 아브라함은 담대히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디는 순종의 조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순종”에 있는 게 아니라, “순종=복”에서 발생한다. 물론,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도 복을 누렸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순종을 해서, 그 땅을 복으로 본인이 받은 건 아니다. 사실, 엄밀하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소유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 가나안 땅을 떠도는, “나그네 인생”이라고 스스로 고백한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창세기 23:4

 

분명히, 하나님은 그 땅을 준다고 약속하셨다. 즉 ,약속대로는 반드시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인생 말년에 자신을 “나그네”라고 부르며, 마치 땅을 얻기에 실패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못 얻은 것일까?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인가?

 


 

"장막"의 이동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
창세기 12:8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와서 "장막"을 쳤다. 여기서 장막은 오늘날 "이동식 텐트"에 해당한다. 따라서, 아브 라함이 장막을 쳤다는 건, 지속적인 이동을 암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오랫 동안, 가나안 땅을 돌아다녔다. 경로는 아래와 같다.

 

벧엘 동쪽 땅(12:8)

:

애굽 (12:10)

:

네게브 (13:1)

:

벧엘 동쪽 땅 (13:3)

:

마므레(13:8)

 

 

아브라함은 왜 이렇게 자주 이동할까? 성경은 "거주"(혹은 거류)하기 위해 장막을 친다고 기록하기 때문에,분명 그는 거주지를 찾고 있다. 그런데, 왜 거주지를 이토록 찾지 못할까? 실은 이에 대한 이유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창세기 12:6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창세기 13:7

 

 

거주지를 옮긴 이유로 “기근”, “조카(롯)와의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나안 민족의 거주"였을 것이다. 물론,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브라함은 가나안 민족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혹은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영향권을 벗어나려 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아무튼, 아브라함의 장막이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동을 거듭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장막"의 정착: 마므레 땅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13:18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가나안 땅에 약 62년을 살았다. 그리고, 이 기간 중에 50년 이상을 마므레 땅에서 거주했다(12:4, 17:17, 23:1). 물론, 중간에 마므레를 떠나긴 해도,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아마도 그곳이 안정적인 거주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은 하필 마므레를 "거주지"로 정했을까? 우리는 다음의 구절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창세기 14:13

 

마므레 땅에는 "아모리 족속"이 살았다. 그리고, 그 땅의 족장은 "마므레"라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땅의 이름은 "마므레"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는 마므레와 아브람이 서로 "동맹"(언약)이라는 점이다. 이건 여러 가지로 유추가 가능하지만, 최소한 아브라함의 신앙과 안전을 배려해 준 것 같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오랜 기간 마므레에 거주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의 영웅적 덕목 때문에, 아브람은 결코 멸시를 받지 않은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John Calvin, Commentary on Genesis, 383–385.

 

 

아브람은 그의 세 친구와 헤브론에서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앞선 사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John H. Sailhamer,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Genesis–Leviticus (Revised Edition), 2008, 1, 165.

 

 

50년 후 마므레 "장막"


 

성경은 아브라함의 모든 행적을 다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은 짧아도 시간은 상당히 흘렀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나이로 계산해보면, 사라가 죽었을 때는 마므레에 거주한 지 50년이 흘렀다. 물론, 중간에 브엘세바(창 22:19)에서 거주했지만, 다시 마므레(헤브론)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모리 족속”이 아닌 “헷 족속”이 있으며, 족장도 “마므레”가 아니라 “에브론”이 있다.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창세기 23:2-4

 

 

대부분 학자들은 “마므레”가 “헤브론”에서 북쪽 2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은 마므레를 헤브론과 같은 도시로 말한다. 실제, 지리상 차이가 있든지 없든지, 성경은 두 지역을 똑같이 취급한다(창 23:19).

 

 

마므레는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약 2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K. A. Mathews, Genesis 11:27–50:26,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2005), 1B:139

 

따라서, 우리는 50년 후 마므레 땅, 곧 헤브론에서 다음과 같은 기이한 장면을 목격한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5-6)

 

 

많은 학자는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땅을 비싸게 팔려는 마음의 가식적인 태도로 간주한다. 하지만,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주여","지도자"라고 부르며, 세 번씩이나 그냥 주겠다는 말한다. 또한, 족장 에브론만이 아니라, 헷 족속 모두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즉, 이들은 정말 아브라함을 "지도자"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 의해 개종되어 '하나님의 왕' 곧,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로 간주되었다... 이 이야기는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 대한 높은 존경심과 가능한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기리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James B. Jordan, Primeval Saints: Studies in the Patriarchs of Genesis, (Moscow, ID.: Canon Press, 2001), 72.

 

 

50년 전, 마므레와 아브라함은 “동맹”이었다. 하지만, 마므레 혹은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은 그 땅의 “주인”, 혹은 “지도자” 대접을 받고 있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미 그 땅의 “소유자”가 된 듯하다. 즉, 이 장면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듯한 인상을 받는다. 지금 누가봐도, 아브라함은 그 땅의 “주인”처럼 보인다.

 


 

왕궁의 그림자: "장막"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창세기 23:12-13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주인”으로 대하는데, 그은 그들의 “주인” 대접을 거절한다. 스스로 그 땅의 주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주인처럼, 그 땅을 마음대로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의 땅처럼, 그는 그 땅을 돈주고 매입한다.

 

왜 아브라함은 그들의 주인 대접을 거부할까?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없는 아브라함의 심리를 분석할 게 아니라, 이 말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거기에 집중을 해야 한다.

 

이 말씀은 결국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점진적인 성취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50년 전 마므레 땅에서 그는 “동맹 관계”로 거주했다. 그러나, 지금은 “주인”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그가 주인 대접을 받아도, 그 땅을 완전히 소유한 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큰 민족이 되지 못했고, 아직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언약의 자손도 독자 “이삭”밖에 없고, 그의 공동체도 “민족”이 아니라, “가족”이다. 아직 그는 "왕궁"이 아니라, (이동식) "장막"에 거주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약속대로 그 땅을 얻지 못했고, 큰 민족이 되지도 못했다.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약속의 그림자를 본다. 비록, 아브라함의 "장막"이지만, 대접은 "왕궁"처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왕궁의 빛이 조금씩 비추는 듯하다.

 

 


 

"장막"에서 "왕궁"으로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삼상 5:3)

 

마므레 땅, 곧 헤브론은 아브라함 이후에도, “이삭”, “야곱”이 거주하고, 훗날 “갈렙”을 거쳐,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다. 다윗은 여기서 왕으로 즉위하고, 7년 6개월 동안 헤브론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거주지, 마므레 "장막"! 그 헤브론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결국 성취되었다. 이제, 다윗 시대에는 "가족"에서 "민족"(국가)으로, 또 "장막"에서 "왕궁"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매장하는 장소는 헤브론 (23:19)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 헤브론은 다윗이 유다를 다스리는 왕으로 처음 임명된 곳(삼하 5:3)이기 때문에, 다윗의 후대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John H. Sailhamer,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Genesis–Leviticus (Revised Edition), 2008, 1, 214.

 

오늘날에 적용


 

 

우리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약속에 실패가 없고,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심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사람이 볼 때는 아주 더디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마므레 장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건히 신뢰하며, 비록 더딜지라도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아닐까?

 

 

 

 

 

 

 

'아티클 > (구속사적) 물건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곱의 "사닥다리" (1) : 창세기 28장  (0) 2021.05.07
하갈의 우물 : 창세기 21장  (2) 2021.05.06
노아의 포도주 (창세기 9장)  (0) 2021.05.06
노아의 방주 : 창세기 8장  (1) 2021.05.06
유발의 수금 : 창세기 4장  (0) 2021.05.06
    '아티클/(구속사적) 물건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야곱의 "사닥다리" (1) : 창세기 28장
    • 하갈의 우물 : 창세기 21장
    • 노아의 포도주 (창세기 9장)
    • 노아의 방주 : 창세기 8장
    강희현
    강희현
    장로교회의 교역자, 역사적 개혁주의 장로교회 회복에 관심이 많음. 양질의 글만 올립니다.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