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기억할 요점
중생은 “영적 다시 태어남”(거듭남)을 의미한다.
중생은 “영적 다시 태어남”, 곧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를 정하신 때에 부르시면, 성령의 역서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거듭남은 “영적”이기 때문에, “몸”(육신)의 재구성이나, 재발생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중생은 어디까지 영적이라는 잘 기억해야 합니다.
중생의 영적 유익은 “거룩한 성향의 발생”이다.
중생이 “영적인 다시 태어남”이지만, 영적으로 완전히 무죄하게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중생의 결과로 얻게 되는 유익은 “거룩한 성향의 발생”이라고 말할 수 있죠. 중생 이전에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멀리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중생 후로 신자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사랑하는 성향이 발생하는 겁니다. 물론 이 성향은 아직 불완전하지요. 하지만 중생을 통해, 이 성향이 생겨났을 뿐 아니라, 성령께서 날마다 이 성향을 더 완전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신자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생으로 신자는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는 앞선 2번의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인간을 네 가지 상태, 1)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posse peccare), 2)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non posse non peccare), 3)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posse non peccare), 4)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non posse peccare)로 구분합니다. 여기서 1)은 태초에 아담의 상태, 2)는 타락 후 인간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부르심을 받고 중생하면, 3)이 되고, 장차 천국에 가면, 4)가 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런 구분에 근거할 때, 3)은 중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겁니다.
“더” 기억하면 좋은 견해들
단회적 중생과 점진적 중생
보통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중생을 단회적 사건으로 규정합니다. 쉽게 말하면, 불신자에게 성령꼐서 처음 역사하실 때, 우리를 단번에 거듭나게 하신다고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실 칼빈과 같은 16세기 개혁자들은 중생이 점진적 사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중생(거듭남)은 꼭 일순간에 일어난다고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중생에 있어서 특정 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는 겁니다.
초자연적 중생 vs 윤리적 중생
전통적으로 중생은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 변화, 혹은 재창조로 이해합니다. 성경이 중생을 영적 거듭남으로 너무 명백히 말하기 때문이에요. 반면, 현대 신학자들은 중생을 단순히 도덕적 변화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의 성도로 살면서, 남들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비롯되는 변화로 말이에요. 이런 이해는 주의해야 하고, 중생의 신비를 항상 인식해야 합니다.
“꼭” 생각해보기
모든 성도는 “중생자”이지만, 불신자들은 “비-중생자”입니다. 앞선, 인간의 4중 상태에 근거해서, 성도가 불신자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지를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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